*서울주보(제2159호),  2018년 1월 28일(나해)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생명의 말씀)     우리를 살려주시는 주님의 말씀


*글: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발명가 에디슨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을때면 그는 서슴지 않고 “내가 어려울 때 나의 어머니가 나를 믿어주시는 사랑의 말씀 

한마디 때문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에디슨 어머니, 아무래도 이 아이는 학업을 따라가기에는 

지능도 모자라고 유별난 행동으로 더 이상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에디슨(1847년~1931년)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초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해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유독 그의 어머니만이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들아, 학교에 못 가도 네가 혼자서 열심히 독학을 하면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가 잘 하리라고 믿는다.” 


그의 어머니가 일곱살 아들에게 천재성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감싸주고 격려해 주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아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그저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공허한 것은 

아닙니다. 


말은 형체를 지니고 분명하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힘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인간의 말도 나름대로의 힘을 

지니고 있는데 하느님의 말씀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하느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더러운 영이 들린 한 사람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시자, 더러운 영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병도 낫게 하시고 더러운 영도 쫓아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점은 바로 예수님의 자비심과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분의 행동으로 그것이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니라 능력과 힘이 있는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매일 많은 말들을 합니다. 

그중에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말, 사랑스러운 말의 씨앗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험담과 악담의 말은 결국 자신에게 해를 가져다주고 고통 의 열매를 안겨줍니다. 우리도 늘 다른 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치유해주는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실지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주간에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