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139호),  2017년 9월 24일(가해) 연중 제25주일


(생명의 말씀)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느님


*글: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1990년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대의 젊은이 네 명이 승용차를 타고 친척 결혼식에 가던 일가족을 납치하고, 돈을 빼앗고, 

탑승자 전원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살려달라고 울며 애원했음에도 젊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결국 네 명의 범인 중 한 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세 명은 붙잡혀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그중 두 명은 사형이 집행되어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사형수 중 한 명은 2년 동안 교도소 생활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 사형수는 사형 집행 전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하찮은 목숨입니다. 마지막으로 회개를 합니다. 

내 장기를 고통받는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고 난 다음에 그 사형수를 교도소에서 몇 년 동안 돌보았던 성직자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흉포한 죄를 지은 사람이었는데 회개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그 성직자는 대답했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았느냐 여부는 인간인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사형수는 인간 세상에서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벌을  받았고 회개의 표지로 자신의 시신을 기증했습니다. 


구원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오늘 복음은 선뜻 이해가 잘 안 갑니다. 

만약 오늘 복음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처럼 품삯을 준다면 일꾼들은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할 것입니다. 

어떻게 열 시간과 세 시간, 그리고 한 시간 일한 임금이 똑같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일한 시간대로 계산을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속 비유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일꾼들이 받을 품삯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열심했던 바리사이들과 

유다인들을 심중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바리사이들은 적어도 자신들은 이방인들과는 다르며, 더구나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과는 격이 다른 우월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들에게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죄와 공로를 낱낱이 

헤아린다면 우리 중에 나는 죄인이 아닌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같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죄인이나 불의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리시며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죄인이 죽기보다 

살아서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주님께서 우리 인간식으로 품삯을 정하지 않으시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