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제2138호),  2017년 9월 17일(가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생명의 말씀)   고통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


*글:  최규하 다니엘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문득 ‘날마다’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무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우리이지만, 그 고통의 십자가를 ‘날마다’ 짊어져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가벼운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기만 하면 모든 고통과 수고로움에서 해방시켜주마’라고 말씀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고통은 사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주어지는 보편적인 삶의 현실입니다. 부자든 아니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어른이든 아이이든, 여자든 남자든, 모두가 나름의 고통을 견디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 신앙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고통의 현실에서 제외시켜주지는 않습니다. 

이렇게도 일상적인 우리의 고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것의 의미 없음 때문이 아닐까요. 

왜 유독 우리 집은 이렇게 불화에 시달려야 하는지, 왜 나에게만 취직의 길은 이리도 험난한지, 왜 내가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지 등. 왜 내가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갖가지 고통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를 때, 

숨통을 끊어버릴 듯 달려들어 우리를 질식시키는 것은 바로 그 고통의 무의미함입니다.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유라도 알았더라면, 극심한 출산의 고통 후에도 그 고통이 이렇게 소중한 아기를 낳기 위함이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 산모처럼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할 텐데. 기도하고 애원해도 지겹게도 반복되는 고통의 현실에 

우리 영혼은 차츰 지쳐갑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무의미하게만 보이는 우리 일상의 고통이 사실은 그 안에 

심원한 의미를 담 고 있는 신비임을 알려주십니다. 


곧 고통은, 달리 피할 길이 없기에 감당해야만 하는 부조리한 인간의 숙명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죽음마저 감내하셨던 예수님 삶의 정수. 당신의 그 십자가 삶에,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고통을 통해 동참하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인간 실존의 무의미한 한 단면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걸어가는 여정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일상의 고통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나와 함께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경험합니다. 


오늘 우리가 미사에서 기억하는 한국의 순교자들은, 삶 의 고통을 십자가 삼아 기꺼이 짊어지고 주님을 따랐던 신앙의 증거자들입니다. 

그분들처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우리도 매일의 삶에서 

‘주님, 제게서 이 십자가들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주님, 제가 이 십자가들을 짊어지고 끝까지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 Peac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