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 지 사흘
“여기가 바로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바쳐야 할 장소다”
아버지 말에 아들은 침묵했다
차마 이렇게 물어볼 용기가 없었으므로- 제물은 어디에 있나요?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고, 칼도 있어요, 그런데 제물은 어디에 있나요?
“하느님께서는 손수 제물을 찾으신다”
아브라함은 말했다, 그리고 침묵했다
‘제물은, 나의 아들아 바로 너란다’라고 차마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으므로

침묵 가운데 펼쳐진 막막한 암흑, 지금껏 이끌어주던 목소리,
이젠 목소리조차 침묵에 묻혀 버렸다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름 하나만으로 덩그마니 남겨졌다

이제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고 불을 피운 다음 이사악의 손을 묶어야 하리라
자, 그러고 나면? 곧 장작이 타오르리라.
그러면 죽은 아들의 아버지가 된 자신을 보게 되리니
목소리가 주셨던 그 아들을 지금은 영영 데려가려 하시는구나

오, 아브라함이여, 모리야 언덕에 올랐던 그대
그 곳은 부성의 경계선이요, 그대가 감히 넘을 수 없는 문턱이었음을

바로 이 곳에서 또 다른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의 희생을 받아들이신다.
두려워 마라, 아브라함이여!
앞장서 걸어가라, 묵묵히 주어진 의무를 행하라
그대는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니 네 의무를 끝까지 행하라

그 분께서 친히 그대 손을 멈추어 주시리라
제물에 마지막 일격을 가할 준비가 갖추어지면
그 분께서 그대 손을 허락지 않으시리라
이미 그대의 마음으로 실천한 그 일을 손으로 다시 행하는 것을

그렇다, 그대 손은 공중에서 멈추게 되리니
그 분께서 친히 붙잡아 주시리라
이 순간부터 모리야의 언덕은 희망이 되리라
그 곳에서 신비가 이루어지리라

3부-